[서평] 차가운 자본주의

2023. 7. 14. 17:38

 

윤루카스 저 / 떠오름 / 2023년 06월 26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원천적 감정인 욕망은 나쁜 게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움켜쥘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기회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주어진 환경을 전부라 여기며 세상을 표독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나는 혐오한다.”

 우리는 부러운 대상에 대한 질투와 비난이 아닌 자기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자본주의' 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또 시장경제는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잔혹하지만 현재로선 자본주의가 최선이며, 경제에 대한 이해는 삶의 근간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진실을 알고 싶고, 불안한 경제 상황 속에서 자기 역량을 키워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개인의 이기심과 공공의 이익은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개인의 이기심을 따르는게 도덕을 강요하는 것보다 공공의 이익에 바람직하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

 

 

 

 인간은 욕망으로 가득찬 존재다. 그렇기에 그 욕망을 잘 건드리면 세상을 위해 헌신하기도 하고, 인류를 더 발전시킬 엄청난 발견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 임금이다. 취약 계층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정책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여유로운 수준의 생활을 '최저 임금제'를 누리지 못한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아르바이트를 찾는 이들에게는 일자리를 뺏어가고, 자영업자에게는 인건비가 올라가게 됨으로써 부담을 주고, 소비자에게는 물가가 올라가게 됨으로써 소비가 꺼려지게 되는 총체적 난국인 상황을 야기한다. 거기다 발전 가능성이 넘치는 이들의 가능성을 프레임 안에 가두고, 최저임금이라는 늪에 빠져 최저임금이 보장해 주는 정도의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기본소득'의 사전적 정의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이다.

 

 너나 할 것 없이 그 '푼돈'을 받으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때, 나라 경제가 무너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열심히 일해야 50만 원을 벌었는데 아무것도 안 해도 매달 50만 원을 받는다면, 돈의 가치가 심하게 떨어져 폭락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이나 기본소득과 같은 복지정책은 사회의 마지막 안전장치로, 여기에만 의존하고 권리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앞으로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복지정책은 더 열악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집에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면 집값이 오른다' 라는 사실은 진리이다.   왜냐하면, 집은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집을 가진 사람들, 소위 있는 놈들이 밉다는 이유로 세금으로 뺏어달라고 외치는 순간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지난 5년간 집값이 어떻게 되었는지 당신들은 보지 않았는가? 부자들의 주머니를 더 비워서 당신에게 무엇이 돌아왔는가?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졌고 물가는 폭등했다.  의식주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물가가 하나만 상승해도 나머지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돈 있는 사람들이 집을 사는 행위는 매우 자연스럽고 문제될 것이 전혀 없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집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는 문화가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혀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집을 '배급'한다고 가정하면, 결국은 특정 권력자의 눈에 드는 순서대로 집이 돌아갈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집은 '상대적 값어치'를 지닌다. 집을 배급한다고 했을 때, 당신에게 강남의 집이 배급될 것 같은가? 강남까지 갈 것도 없다. 서울의 집이 배급될 것 같은가? 경기권은커녕 지방의 빌라가 아닌 '아파트'만 배급받아도 천운이다.

 

 

 

 이제  집은 단순히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목표이자 부의 상징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민감한 문제인만큼 부동산 관련 정책은 신중하고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지난 정권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저자는 국가가 간섭해서 '만드는' 사람을 탄압하면 그 부담은 '소유하려는' 사람에게 이동하고, '소유하는' 사람을 탄압하면 결국 '빌리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함께 사는 사회이고 모든 것이 맞물려 있는만큼,  정책 결정자들은 눈앞에 이익만 좇아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재능은 각자 다르다. 그 재능의 수준마저도 다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절대적 재능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낮은 기회비용이 드는 일이 반드시 하나는 존재한다.  이것을 '비교 우위'라고 한다.

 

 예를 들어, 손흥민 선수는 축구 경기를 하는 게 가장 기회비용이 적고,  이연복 셰프는 요식업을 하는 게 가장 기회비용이 적다.

 

 

 일을 통해 부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아닐까 싶다.

 

 

 

 

 

 한계효용은 욕망의 정도에 '비례'하며, 재화의 존재량에 '반비례'한다.  그래서, 생존에 꼭 필요한 물이 생존에 하등 쓸모없는 다이아몬드보다 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 아무리 좋은 옷, 아무리 좋은 집, 아무리 좋은 차를 소유하고 있어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그 기쁨의 지속 시간을 뭉개버린다.  결국, 행복을 지극히 물질적인 것들에서 찾으려고 할수록 자극의 역치만 높아지고, 공허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은 충족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 이상은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 무엇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이 포스팅은  떠오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